변론
P는 어머니를 죽였다.
본래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그의 가정엔 아무 싸움도 없었으며, 그날 아침에도 P는 어머니와 같이 TV를 보며 과일을 나누어 먹었다.
어머니의 시체는 부엌의 식탁과 가스레인지 사이에 있었다. 깨진 두개골 조각이 피와 뇌수에 범벅이 되어 여기저기 끈덕지게 흩어져있다. 그는 으깨진 두개골 사이에 손가락을 넣어본다. 소름이 끼쳐 바로 뺀다. P는 재빠르게 화장실로 들어간다. 옷을 벗어 욕조에 놔두고, 샤워를 한다. 식은땀이 흐르며 긴장되었던 몸에 따스한 물을 부으니 노래가 절로 나온다.
'죄책감은 느껴지니 난 양심이 있는 거야.'
멋진 변명이다.
P는 옷을 갈아입고 모자를 쓰고 집 밖으로 나선다. 단지 어머니의 시체와 함께 거실에 있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공포에 도망치려는 게 아닌, 다른 것이었다.
P는 그의 친구가 사는 하숙집으로 향한다. 하숙집 아주머니는 살갑게 대해준다. P도 신사처럼 살짝 미소 짓는다. 친구는 방은 술 냄새가 난다. 매트리스 위에서 P의 친구는 자고 있다. P는 친구를 깨우지 않고, 다시 나간다. 아주머니가 다시 살갑게 대해준다. P도 신사처럼 살짝 미소 짓는다.
P는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다시 보니 가스밸브가 열려있었다. P는 가스밸브를 잠그러 식탁으로 이동하다가, 발에 어머니의 시체가 채인다. 살짝 쳐다봤지만, 미동도 없었다. 가스밸브를 잠근다. P는 베란다로 가서 조립식 빨래건조대를 해체하기 시작한다. 문득, 빨래가 걸린 긴 쇠막대기를 잡고, 빨래를 털어낸다. 모자를 쓰고 다시 바깥으로 향한다. 쇠막대기가 가벼워 기분이 좋다. 계단을 내려가는 P의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P군, 어딜 그렇게 즐겁게 가?"
"친구랑 약속이 있어서요."
살짝 미소 지으며 P는 집주인에게 말한다.
"나중에 아버지랑 같이 술 한 잔 하자. 내랑 너네랑은 같은 동문이니까 볼 때마다 그 뭐랄까 동지감이라는 게 막 생기는 것 같어. 친 아들내미 같단 말이야."
P는 아무 말도 않고 층계를 쳐다본다.
"아무튼, 잘 갔다 와라."
"예."
P는 멀리 가는 척 하다가 다시 뒤로 돌아 집주인이 계단을 오르는 것을 훔쳐본다. 그는 쇠막대기를 세게 쥔다. 그리곤 집주인의 차 뒷 유리창을 깬다. 날카로운 경보음이 동리를 울린다. P는 쇠막대기를 저 멀리 던져버린다. 집주인이 허둥지둥 내려온다. P는 그 모습이 마치 돼지 같아 슬쩍 비웃는다.
"시방, 뭐여 이게."
"잡을라 했는데 못 잡았어요."
P는 헐떡이는 연기를 하며 말한다. 집주인의 의심스런 눈초리는 P를 향했지만, 깨진 유리창이 제일이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저 이만."
P는 다시 갈 길을 간다. 집주인 아저씨는 P를 향해 무어라 말을 했지만 P는 안 듣는다. 들리긴 하였으나 바로 기억에서 지워버린다. 집주인이 다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떡집의 트럭 뒤에 몰래 숨어 지켜본다. P는 뒤통수가 짜릿했다. 아둥바둥 하며 전활 걸고, 떵떵 소리치는 아저씨의 모습을 보며 웃는다.
'항렬 하나 높은 게 뭐 대수라고...'
P는 단상을 하고 뒤로 돌아 시내로 향한다.
이제 곧 해가 저물어 갈 시간이다. 그가 시내에 도착할 때엔 해가 완전히 진다.
P는 화려한 산호 군락 속에 뒤섞인다. 딱히 할 것은 없었다. 정한 것도 없었고, 원하는 것도 없었다. 사람들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렇게 한참을 걸으니, 낯선 거리를 직면한다. 왼쪽 발목 위 근육이 아프다. 집에 돌아가기로 한다.
'죄책감은 느꼈으니 난 양심은 있다.‘
새벽 즈음 되었을까, P는 집 앞에 도착한다. 경찰차 2대가 서있다. 두 경찰관이 P에게 다가와 수갑을 채우며 무어라고 한다. P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경찰차는 뒷좌석에 손잡이가 없구나.’
P는 신기해한다. 본래엔 손잡이가 있어야 할 민둥하니 어색한 부분을 반히 본다. 차가 멈추고, P는 꺼내어진다.
사거리 앞에서 어떤 아줌마가 큰 소리로 욕을 하고 있다.
"너 어리면 다냐? 스무살이면 다 야? 이 미친년아 이 육실헐년...“
이 말을 반복해서 소리치고 있다. 당연히 P와 경찰관들 모두 쳐다본다. 그런데 이 아주머니는 사거리에서부터 경찰관 앞까지 소리치며 걸어온다. 밤늦은 새벽에 큰 소리로 명확한 대상도 없이 욕을 하며 걸어 다니는데 정말 누가 미쳤는지. 그 아주머니를 화나게 한 사람이 미쳤는지, 아주머니가 미쳤는지. 아니면 남의 일에 대해 이 정도까지 상상하는 P가 미쳤는지.
갑자기 P는 유리된다. 옆의 빠른 흐름을 본다. 보도블록의 일렁이는 물결무늬를 따라 고개를 흔든다. 경찰관은 아주머니를 말린다.
P는, 잠시, 머뭇거린다. 급류가 손짓한다. 연석에 걸터앉는다. 발을 도로에 담근다. 때마침 몰려오는 무지근한, 하지만 기민한 급류가, 부닥친다.
두 개의 향이 목을 탁 꺾으며, 무너져 내린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알려주실분 1
'인간이 어떠한 생명체보다도 본래적으로 우월한 존재는 아니다'라는 입장이 레건은...
-
자녀계층은 부모계층보다 낮을수없다 = 부모계층 대비 자녀계층은 낮을수없다 =...
-
지금은 사칙연산도 똑바로 못하는 깡통으로 전락함
-
수능끝나고 은거하고싶다
-
신기하네
-
과탐은 우승자가 정해져있는 100m 육상경기와 같다.. 내가 강의를 듣고 n제를...
-
기출모의고사나 실모풀때 1~3등급 진동하시나요? 그러셨으면 어떻게 잡으셨나요!?!?
-
농담 아니고 15분 57초 걸림;; 왜 이렇게 오래걸리나요~~
-
10덮 후기.. 1
언매 96 미적 84 영어 89.. 생명 44 지구 36 ㅎ; 지구 맨날 열심히...
-
95점 쩌러레츠고 ㅋㅋ
-
어후 도시 답답해서 어케사냐
-
스위스 한달살기
-
구리 니켈 합금은 공융점이 순수구리 결정에 가장 가까울 때 아님? 그러면 공융점이...
-
하 ㅋㅋ
-
아 유기개망 0
점프
-
성의증원 3
진짜됐는데.? 나만 몰랐어? 뭐냐이거
-
ㅅㅂ이거 다 끝낼 수 있나
-
무보 보정 각각 몇뜰까요?
-
아오 수학시치 2
실력 오른줄 알았더만 실모푸니까 개같이 70점대 나오네 수학 실모 넘 어려워
-
제이스 생각나면 ㅈ된거임?
-
화학이나 물리 하나로 생지 커버칠듯
-
. 2
양적연구라도 가치개입이 필요없는건 아님 주제선정, 결과를 활용하고 대안 모삭할땐...
-
요즘 사설 모의마다 보이네
-
김승모를 봤어요 0
독서-2 문학-3 화작-5…? 괜히 화작런 했나 ㅅㅂ..
-
이 시기, 많은 수험생이 번아웃을 경험합니다. 열심히 공부를 했지만 성적이 기대만큼...
-
지구과학 1일 1지엽 11
우주의 물질 밀도와 암흑 에너지 밀도가 같을때 우주는 등속 팽창하는가? [O/X]
-
찍맞을 3년간 축적해온거야... 그랴그래 3년간 찍맞을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
이 문제 엠스킬 적용 안되는거 맞나요? 임정환쌤 도표 문제인데 강의 들어도 무슨...
-
걍 끝까지 기출이랑 ebs가지고 가야될까요?
-
다들 후기 남겨봐요.
-
할필요없겠지? 화작은 해줄만하긴한디
-
尹 "돌 던져도 맞고 가겠다" 韓 "국민만 보고 민심 따르겠다"[뉴스쏙:속] 13
출근길에 필요한 뉴스만 '쏙' 뽑아 '속'도감 있게 전달해드리는...
-
추가 자료: https://earthathome.org/hoe/plate-tectonics
-
진짜 존나 빡빡하네...36점인데 이거 잘하면 2뜨려나
-
강 보법이 다름 ㅋㅋㅋㅋ 이건 75살 먹은 원로가수 할아버지의 20번째 앨범에서...
-
국어 2였는데 연계벅벅+다양한 문풀경험으로 수능장 고점찍은애 많음 22수능은 본인...
-
한국이 36,130달러 정도를 기록하며 동아시아 1위 됨
-
2등급 내놔!!!!!!!!!!!!!!!!
-
???
-
일주일에 두세개? 11월부턴 1일 1실모?
-
아 그냥 죽고 싶다 공부해도 하는 것 같지도 않고
-
45 42 화1은 올해 현장에서 처음 틀려봐서 저렇게 잡아봤고 생1은 평소 서바...
-
걍 희망없으면 딴과목 팔까
-
헤이~ 하버드! 5
진짜 공부벌레가 뭔지 보여줄까?ㅋㅋㅋㅋ
-
이거 보정 3은되나요 진짜 이러다 최저도 못 맞출꺼같은데..
-
"차라리 편의점 알바"…인력난 시달리는 '월 206만원' 요양보호사 1
[편집자주] 내년부터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
-
기분 좋군
-
수능이 한 달 남은 이 시기, 많은 수험생이 번아웃을 경험합니다. 열심히 공부를...
-
ㅈㄱㄴ
필력ㄷㄷ 수특 지문인줄
뭐야 왜 문제가없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