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본질, 본능
우리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쉽게 사용한다. 하지만 근본적인 행복은 단순히 즐거운 감정이라는 일반적인 통념보다 훨씬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물질적인 풍요나 육체의 편안함 이외에도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며, 어쩌면 물질적, 육체적인 부분조차 상당부분
정신적인 만족을 위한 것일지 모른다. 그런데 만약 이 정신적인 추구가 어떤 특정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면 어떨까. 그 방향은 모든
선택의 기준이 되고, 삶의 방식을 결정할 것이다. 게다가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방향이 일치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존재목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성, 우리는 이것을 행복이라 부른다. 그럼 이것의 실체는 무엇일까.
구체적인 방법을 논의하기에 앞서, 행복의 본질에 대해 알아보자.
인간은 오래 전부터 행복을 규정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세상은 무엇인가.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원하는가. 그것을 어떻게 가질 수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인가.
행복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이해를 필요로 한다. 모든 학문과 기술의 발달은 행복을 알아가고 실현하는 바탕이 되지만, 특히 신학,
철학, 생물학, 심리학 등의 학문은 직접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를 높이며 행복에 대한 인식을 주도해왔다. 행복에 대한 사상의
변화는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쳤지만, 각 과정을 주도했던 핵심적인 사상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처
음은 신앙이다. 우리는 누구나 본능적으로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려 한다. 이것이 행복을 판단하는 가장 기초적인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인간과 세상, 자연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원시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도처에 널려있으니,
어떻게든 이것들을 이해하고 설명해야 했다. 그들은 스스로의 이해를 위해 신비한 미지의 것들, 특히 자연에 위대한 인성을
부여했으며, 이를 의지하게 된다. 인간이 드디어 신을 엿보게 된 것이다.
신은 종교의 형태로
발전하며 더욱 구체적으로 인간의 행복에 관여한다. 세상은 신이 창조했고, 인간은 개인적인 방법과 노력으로는 행복할 수 없으며,
오직 신의 구원을 통해서만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사상이 생긴 것이다. 행복을 꿈꾸기 힘들었던 당시 사람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행복은 신의 구원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으니 삶에 얽매여 느끼게 되는 불행에서 자유를 찾게 되었고, 죽음 뒤에는
새로운 세상이 있으니 죽음의 두려움은 희망으로 바뀌었다. 도무지 찾을 수 없던 정신적인 만족을 신에 대한 믿음으로 얻게 된
것이다.
신의 피조물인 인간은 더 깊은 행복을 원했고, 여전히 남아있는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할 필요가 있었다. 신에 대한 깊은 고찰을 시작한 것이다. 신으로부터 유래한 모든 것, 자연과 인간을 비롯한 각
학문들은 발전을 거듭했고 이에 따라 신과 종교의 교리도 강화되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세상과 나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스스로의 이성을 통해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사상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가 빨간 약을 삼키는 심정으로, 신에
의한 세상과 나를 벗어나, 그 자체로 신이 되기로 한 것이다.
다음은 이성이다. 인간의 특징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이성은 그 중 결코 빠지지 않는다. 많은 동물들은 전적으로 본능에 의존하여 살아가지만, 우리는 이성으로
그 한계를 넘어섰다. 우리에게 완전한 본능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어떤 상황에서 정해진 감정과 욕구가 생기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본능이라면, 우리는 스스로 욕구를 억누르기도 하고, 상황을 재해석하며 감정을 변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환경변화에도 유연하게 적응하며, 환경 자체를 변화시킬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이성, 신의 그늘을 벗어난 인간은 이
이성을 통해 행복을 찾으려 한 것이다.
이성은 우리의 주인이 되었다. 불행하고 비참한 삶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욕구와 본능을 부정하고, 이렇게 자유로워진 이성으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사상이 생긴 것이다. 이제
문제는 순수한 이성만 남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 하는 것으로 좁혀졌다. 냉철한 이성을 앞세운 인간은 추측, 사유를
비롯하여 명확하지 않은 신념, 신앙과 같은 불분명한 부분은 모두 배제하고, 합리적으로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존재의 근본,
절대적 진리를 찾기 시작했다. 인식, 논리, 언어와 같은 기본적인 부분을 세부적으로 분리, 재정립했으며, 이를 통해 사물과 현상,
도덕과 윤리, 참과 거짓,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개념을 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하
지만 신을 거부하고 스스로 행복을 찾으려 했던 인간의 도전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성은 절대적인 진리를 찾지 못했으며,
이성으로 바라본 세상은 허무했고, 행복조차 덧없는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학문과 기술은 발달을 거듭했고,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해는 더욱 깊어졌다. 신에게 돌아갈 수도, 신 없이 행복할 수도 없던 인간이 행복에 대한 또 다른 실마리를 잡은
것이다.
마지막은 본능이다. 인간은 이성으로 모든 본능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또 그러기
위해 애써왔다. 하지만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여전히 본능이라 부를만한 것은 존재했다. 사냥을 떠나던 원시인도, 복음을 전파하던
종교인도, 진리를 찾던 철학자도, 고무를 채취하던 노예나, 탐욕 가득한 왕, 우월감을 추구하는 현대인까지 상황과 환경에 따라
가치관과 삶의 방식은 다양했지만, 언제 어디에서건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특정한 방향성이 존재했던 것이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이조차 신의 뜻이었고, 이성으로 행복을 찾으려면 이를 염두 해야만 했다. 모든 인류가 원하고 추구하는 것, 즉
행복의 본질은 태어 날 때부터 특정한 형태로 정해져 있는 본능이었다.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본능이다. 행복의 본질은 DNA에 저장되어 있는 본능이므로, 이성과 규칙에 묶여있던 순수한 욕망을 찾고, 개인의 자유를 마음껏
추구하며, 마음 가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통상적인 행복의 방법이 되었다. 하지만 마음 가는 대로 살아간다며, 타인의 것을 빼앗고,
놈팡이처럼 빈둥거리고, 지나가는 이성에게 마구잡이로 입맞춤을 한다고 행복할 수 있을까. 행복의 본질이 본능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지금도, 아직 해결해야 할 숙제는 남아있다. 우리는 구체적으로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지를 알아야 하며, 이것이 행복연구의
핵심이 되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행복의 변천사를 알아봤다. 행복의 본질은 본능이다. 이 단순한
사실을 알기까지 인류는 참 먼 길을 걸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노력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신앙은 그 진실성에 대한
논란으로 예전처럼 학자들의 찬양을 받지는 못하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개인과 구성원으로 갖춰야 할 태도를 직간접적으로 전파하며
행복에 도움이 되는 요소로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성은 욕구, 감정과 같은 본능을 단지 불행의 요소로만 생각는 바람에 행복을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행복의 본질이 본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지금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구체적으로 무엇을 추구하고 어떻게
추구해야 하는지를 밝혀내는 주역이 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사상이 생겨날 수 있었으며,
실질적으로도 사회구조, 법, 인간의 권리, 자유, 물질적 풍요 등 당시보다 행복에 가까운 지금의 환경을 구축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인
류가 거쳐 온 역사를 돌이켜보면, 한 인간이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류사에는 행복에 대한
부족한 이해와 잘못된 해석으로 인해 잔혹하고 비정한 순간이 참 많이 있었다. 이는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지만, 좀 더 멀리서
지켜보면 그 방향은 언제나 행복을 향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학과 기술, 인문학과 예술이 발전하고 이에 따라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우리는 스스로 진정 원하는 모습을 차츰 깨닫게 될 것이고, 그 모습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행복은
인류의 근원적 질문이자, 모든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행복의 본질이 본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현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행복이 본능에 기인한다는 것은 상식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이
단지 여기서 그치는 바람에 많은 오해를 하며 도리어 불행에 빠지곤 한다. 행복의 본질은 본능이지만, 단편적인 욕구나 감정과는
차이가 있다. 행복은 이 모든 욕구와 감정의 조화이자 근본이기 때문이다. 이토록 힘겨운 과정을 거쳐 알아낸 행복을 자신의 삶에
적용시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너무 아쉬운 일 아닐까.
출처 DC인사이드 철학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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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너무 안 하고 오르비에 쏟는 시간이 너무 많아서 탈르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비트겐슈타인: 뭐래
근데 정말 생각해 볼 여지가 많기는 하네요, 이 애매한 용어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
네, 시대에 따라 바뀌는, 그러나 모든 시대에 공통적으로 화제였던 저 용어 말이죠...
읽을 분만 읽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