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부여 [1325791] · MS 2024 · 쪽지

2024-10-26 22:4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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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들아 '술'은 원래 ㅂ이 있었다는 거 알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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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블>수ᄫᅳᆯ>수을>술


‘술(alcohol)’이라는 단어 다들 알고 계시죠? ‘술'의 옛말은 '수을'인데 여기서 ㅜ의 영향으로 ‘수을'이 ‘수울'이 되고 ‘수울'이 축약된 ‘술'이란 형태도 만들어졌는데 이 세 가지 모두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공존했습니다. 그러다 18세기부터 ‘술'만이 남아 쭉 이어지다 표준어가 되었습니다. 


고려 시대 자료인 <계림유사>에선 ‘酥孛(수발)’로, <조선관역어>에는 ‘數本(수본)’으로 나타났는데 이를 통해 ‘술(수을)'이란 단어 역시 ㅂ이 약화되어 순경음이 되었다 그 순경음이 탈락한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삼국사기 자료에는 “豊夫城 夲肖巴忽”란 문장이 있는데 이는 “豊夫城(풍부성)은 본래 肖巴忽(초파홀)이다"라는 뜻입니다. 현재 豊은 ‘풍부할 풍'의 약자로만 쓰이지만 원래는 ‘禮(예절 례)’였습니다. 일단 저 기록에서 ‘豊夫’와 ‘肖巴’가 대응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豊’의 상형을 고려하면 ‘술'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肖’의 중고한어 발음은 /*sjewH/이고 ‘巴’의 발음은 /*pae/인데 당연히 고대 한국인들이 한자를 받아들일 때 모음이 변했을 것이므로 *수블(swupul)과 연관 지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문헌 근거로는 “酒多後云角干”가 있습니다. “酒多(주다)는 이후에 角干(각간/서불한)이라고 불렸다.”라는 뜻입니다. 角은 ‘뿔'에 대응하는데 ‘뿔'의 15세기 표기는 ‘ᄲᅳᆯ’이며 어두자음군은 본디 모음이 탈락하면서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기에 ‘서불한'의 ‘서불'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酒多과 角干이 동일한 대상을 나타내는 말이라면 酒은 당연히 훈독자일 것이니 ‘술'의 고대 국어 형태와 ‘角(뿔)'의 고대 국어 형태가 매우 유사하게 발음됐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삼국사기의 표기를 통해 ‘술(酒)'과 ‘뿔(角)'이 유사하게 발음되었음을, 경덕왕의 한화 정책으로 ‘술'의 옛말에는 ㅂ 소리가 있었음을 알 수 있으니 고대 국어 시기의 형태를 ‘*수블'로 볼 수 있는 근거가 생긴 겁니다.(물론 모음은 ㅜ와 ㅡ가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ㅂ이 계림유사에서도 보이니 고려 초기까진 대충 ‘*수블'이었고 고려 말에 ㅂ이 약화되어 ‘수ᄫᅳᆯ’이 되고 ㅸ이 탈락한 ‘수을'이 조선 시대에 보이게 된 거라는 결론에 이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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