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gnita Sapiens [847641] · MS 2018 · 쪽지

2024-09-24 23: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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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트라우마를 극복한 이야기를 꺼내봅니다 (장문)

게시글 주소: https://gaemichin.orbi.kr/00069277837









 쓰다보니 너무 길어졌는데, 좀 더 직접적으로 제가 추천하는 긍정적 사고법과 정신 건강 관리법 등에 대해서 궁금하면 아래부터 역순으로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제가 무려 9년간 고통을 받았던 극심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된 계기를 용기를 내어 풀어보고자 합니다. 저 스스로에게 위안이 되는 동시에, 정신적 고통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학생이나 성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서 제 사적인 부분까지 곁들여서 이야기를 풀게 됩니다.




 전 2017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앞선 칼럼에서 언급하였었던 것처럼, 수학을 정말 못했고 이 때문에 재수를 선택하게 됩니다. 게다가 자퇴를 고민할 정도로 한국의 입시 체계 하에서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은 것 때문에 양치질을 할 때 헛구역질을 심하게 한다던가, 세상에 대한 원망과 스트레스를 노트에다가 욕과 같이 적는 다던가, 홧병 증세를 보여서 오밤중에 호흡 곤란과 염증 반응이 치솟는다든가 등등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시기를 보냈습니다.




 재수 때는 공부 자체는 훨씬 더 많이 하였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정말 깊이 있는 진리를 깨달았다고 감히 스스로 자부하기에, 만약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더라도 전 고민 없이 같은 재수행을 선택할 것입니다. 다만 거의 하루에 15시간 이상을 공부를 해야 하다보니 정신적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았고, 과민성 대장 증후군과 불면증 등을 심하게 겪게 됩니다.









 그래서 조퇴도 많이 하였고, 병원을 가서 체력 회복을 위해 수액을 자주 맞기도 하였으며,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 심할 때에는 자취방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를 지기도 하였습니다. 재수 막판에는 컨디션이 완전히 망가졌고, 수면제를 받았으나 그 용법과 효과(꽤나 약효가 쎄서 아침까지 몽롱하였음)를 잘 몰랐기에 수능날 아침 국어와 수학에서 제대로 박살이 납니다.




 이후에는 좀 더 체계적으로 약물과 휴식을 적절히 병행하면서, 항상 발목을 잡던 수학을 6평과 9평에서 각각 1등급을 맞고, 수능에서도 백분위 98로 1등급을 받으며 수학에 대한 걱정과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되었습니다(수학에 대한 트라우마를 오늘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2019년에 입학해서 딱 1년이 지나니까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모든 활동이 셧다운되고 저 또한 이미 불면증을 오래 앓으면서 수면제에 의존하는 생활 속에서, 운동량까지 심하게 줄어버리니 중증 우울증을 겪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좀 많이 나아졌긴 하지만 여전히 병원에 주기적으로 가며 상담과 약물 치료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블루 때문에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과 불면증을 겪게 되면서, 이전보다 정신 질환에 대해서 더 개방적으로 사회가 변한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https://ywca.or.kr/webzine_content/%EC%BD%94%EB%A1%9C%EB%82%98%EB%B8%94%EB%A3%A8-%EB%B6%80%EC%88%B4%EB%B2%84%EB%A0%A4/






 다만 코로나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서 제가 우울증을 걸린 것이지, 이미 불면증을 가지고 있었으며, 만성적인 수면 부족과 운동 부족, 그리고 고등학생 당시 생긴 심각한 트라우마를 계속 반추(반추동물의 그 반추처럼, 곱씹는다는 것입니다)하면서 부정적인 생각을 자주 했던 습관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었습니다.




 특히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저에게 큰 트라우마를 남겼으며 무려 9년, 그러니까 올해까지 저를 지배하던 부정적인 생각을 얼마 전 스스로 극복하고 나서야 이제서야 편안해졌기에, 그 성공담(?)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때는 2014년 제가 고등학교 1학년이던 시절로 돌아갑니다.




 당시만 해도 학생부 종합 전형이라던지 특기자 전형이 우후죽순 생기고, 특히 R&E 대회 등 다양한 대학 입시 관련 활동이 생기던 시절 전 우연히 제 스스로 자율적으로 학교에 신청하여 동아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융합과학'이라는 키워드로 ChimeLab(4가지 동물이 융합되었다는 신화의 키메라 + 연구실)을 창설하였습니다. 당시 지도 선생님으로는, 평소 인자한 성격으로 알려진 김경임 화학 선생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나중에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이, 보통 이런 동아리는 학생보다는 학교 선생님이 더 주도적으로 지도하는데, 저의 경우에는 이전에 소개한 것처럼 강력한 추진력을 가졌다는 성격 덕분에, 그리고 호기심이 많고 다른 학생들과 다른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많다는 점 덕분에 제가 주축이 되어 움직였습니다.




 2015년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 본격적으로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하고 대회에도 나가고 상도 받게 되었는데, 누가 알았겠습니까 지도선생님이 가면을 벗을 줄은.....







당시 동아리 이름과 로고부터 시작해서 계획서, 심지어 동아리 참가 시험 등을 직접 출제할 정도로 정말 열정을 쏟아부었었습니다. 특히 제가 과학고에 가고 싶었는데 탈락했거든요. 그래서 과학고나 영재고의 컨텐츠 등을 찾아서 적극적으로 활용하였었습니다

https://prezi.com/4obrdn3guwno/chimelab/






 꽤나 많은 학생들이 참가를 했었고, 제가 일단 한번 촉발시키면서 다양한 동아리들이 동시에 만들어지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교감 선생님께 자율 동아리 창설과 그에 대한 지원을 부탁드리는 편지를 썼었는데, 매우 우연히도 당시 교감 선생님은 제가 오랫동안 다니던 과학 과외 선생님의 스승이기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교무실에서 제 편지를 증거로 제시하며 학생들이 요구하는데 선생님들이 도와주셔야 한다고 강력한 지침을 내려주셔서 제게도 큰 도움을 주신 바 있습니다.




 당시 제 목표는 입시가 아닌 생존이었습니다. 현행 교육제도 하에서 중학생 때부터 이미 슬슬 스트레스와 압박을 받고 있었는데, 고등학생이 되니까 호기심과 지적 욕구는 폭발적으로 팽창하는데 반해 그걸 해소할 수 있는 통로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나마 자퇴를 하지 않고 학교에 묶여있기라도 하기 위해서 동아리를 만들고, 굉장히 열정적으로 활동했는데 당시 대학 입시에는 직접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만 그때 쌓아 놓은 내공 덕분에 지금 요긴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이, 항상 교실에서 수업을 할 때는 인자하고 사투리도 구수하게 쓰시는 화학 지도 선생님이 가면을 벗어던지고 엄청난 짜증과 히스테리, 모욕과 정치질, 화풀이를 제게 하기 시작합니다.







맨 오른쪽에 계신 선생님이 제 든든한 우군이 되어주셨던 김문관 교감 선생님입니다. 독실한 종교인이셨으며 매우 강하고 무서운 살기를 가지셨던, 강한 리더십을 가지셨던 선생님으로 기억합니다

https://www.idaegu.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6138







 워낙 제게 하나같이 심각한 고통과 흉터를 남겼기에 다시 떠올리는 것조차 매우 무섭지만, 그나마 조금 썰을 풀어보자면





 경상북도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과학 동아리 발표 대회에서 예선을 통과하고 본선에서 10팀 중 7등을 했는데, 나중에 동아리 지도 선생님은 "7등(동상)이 뭐냐 하위권이다" 라며 악담을 퍼부었는데, 문제는 정작 본인이 책임을 지게 된, 제가 3학년이 된 해부터 동아리를 지도했는데 예선에서 컷 당하셨습니다 ㅋㅋㅋ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서 환촉에 시달릴 만큼 큰 스트레스를 겪었습니다. 당시 교무실이 제가 있던 2학년 교실과 불과 바로 1층 사이에 있었으며 올라가기만 하면 바로 올 수 있었는데, 뭔가 일이 있을 때마다 저에게 시키기 위해서 전화를 걸었고, 전화를 받지 않으면 왜 받지 않느냐며 심한 짜증을 내셨습니다. 아니 다른 한 선생님들은 전화 쓰지 말라고 단속하면서 이 선생님은 전화를 왜 안 받냐고 난리를 치니까 도저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 지를 몰랐었습니다. 왜 전화를 안받느냐면서, 또 전화 안받으면 아예 때려 치울꺼라고 온갖 짜증을 부렸습니다



 ChimeLab 동아리를 열심히 하고 2학년 말이 되었는데, 따로 부르더니 "우리가 남은 게 없다. 니가 한 게 뭐냐" 라는 식으로 또 욕을 하였습니다. 그 다음 날 경상북도 선정 명품, 우수 동아리로 저희 동아리가 선정되었고, 며칠 후에는 김경임 선생님은 교육감 표창을 받았습니다 ^^ (나중에 듣고보니 승진에 꽤나 도움이 된다고 하더군요. 하긴 제가 동아리를 창설하고 출전하고 받는 상마다 전부 지도 교사로 김경임 선생님이 등록되어 있었으니 분명 선생님의 활약일 것이라고 교육청에서 판단한 것 같습니다 ^^ 근데 교육청이 간과한 것 같아요 어떤 활동이든 항상 교집합으로 저 또한 껴있었다는 것을.... ㅋㅋㅋ)






 

위 사진이 당시 우수 동아리로 선정되었을 때 6월 즈음에 찍은 사진입니다. 명품 동아리는 학년 말에 받게 되었습니다

모두 다 제 동아리 부원은 아니었고, 저희 학교에 존재하는 자율 동아리 부원들이 모두 모여서 찍은 사진입니다https://blog.naver.com/dkilbo70/220748692558





 툭 하면 저를 째려보면서 우 쒸, 하면서 왜 말을 안 듣느냐는 둥, 회식을 했으면 보고를 해야할 꺼 아니냐는 둥(본인이 사준 것도 아닌데 ㅋㅋㅋ) 그야말로 철저한 수직 관계, 화풀이 욕풀이 대상이었습니다. 직접적으로 때리거나 육두문자를 듣는 것 말곤 다 당해봤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특히 당시 경상북도 교육청에서 주관하던 '제 11회 미래과학자 R&E 양성대회'에 참가를 하였는데, 경북대 화학교육과의 민길식 교수님이 연줄이 닿아서 지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김경임 선생님은 하기 싫었는데, 당시 경상북도 50개 고교에서 지원했는데 13곳이 예선을 통과했고, 저희도 포함되었었거든요. 하기 싫지만 위에서(학교에서) 시켜서 억지로 한다는 티를 팍팍 내셨습니다. 웃긴 것은 당시 경북대 박사 과정을 밟고 있을 정도로 승진과 성과급에는 욕심이 많으셨던 분인데(알고보니 교사도 학위가 있으면 좀 더 가산점이 있더군요), 욕심은 많으나 열심히 하기는 싫다는 심각한 괴리가 발생했고, 거기서 나는 스트레스들은 전문 화풀이 담당 저의 몫이었습니다 ^^



 한 번은 제가 치킨을 동아리 부원들에게 쏘게 되었는데, 당시 학교에 화학 선생님이 2분이 계셨고, 화학 실험실의 책임자는 제 동아리 지도 화학 선생님이 아닌 다른 화학 선생님이셨기에, 그 선생님의 허락을 받으면서 동시에 그 선생님의 몫 또한 남겨서 나중에 드렸습니다. 그런데 해당 선생님이 좀 나이도 있고 하시다 보니까 예절에 민감하셔서, 저희들끼리 먼저 먹기 전에 따로 부르거나 대접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약간 아쉬움을 표하셨나 봅니다. 김경임 선생님이 그 말을 듣고선 당장 저를 부르시더니 "눈치가 그렇게 없냐"라는 식으로 구박하더군요. 그걸 듣고 제가 실수를 했다고 생각하여, 해당 화학 선생님께 가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니(정말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죄송하다 이 말만 했는데), 바로 눈치를 채시고 김경임 선생님이 앉은 자리 쪽으로 노려보시더니 "아니 뭐 저 선생님은 그런 것까지 일일이 학생들한테 말하나" 라는 식으로 굉장히 불쾌해 하시더니 제 사과를 받아주셨습니다 ㅋㅋㅋ 사실 눈치가 없던 것은 제가 아니었더군요.










 혹시 QLED TV라고 삼성에서 출시한 TV 광고를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거기서 Q가 바로 quantum dot의 q입니다. 한국어로는 양자점이라고 하는데, 매우 작은 알갱이들이 미세한 크기 변화에 따라서 특정 파장의 빛을 흡수하거나 방출하여 뛰어난 발광 소자로 활용되었기에 꽤 유행하는 분야였습니다. 저희 팀은 바로 이 양자점을 합성하고 응용하는 방안에 대한 논문을 토대로 공부하고 연구를 하기로 했었습니다.

 

 


 보통의 R&E의 경우에는 공공연한 비밀로 보통 대학원생, 조교님들이 교수님보다 더 자주 이야기를 하고 고등학생들을 돕는데, 문제는 저희 팀의 경우에는 당시 지도를 맡으셨던 민길식 교수님도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한번 공부해보고 싶어서 신청한, 고등학생용 R&E 대회로서는 상당히 난이도가 있는 주제였습니다. 그것 덕분에 예선을 쉽게 통과하기도 했었고, 이후 실적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경북대 화학교육과 민길식 교수님께 깊은 감사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 팀은 총 4명이었는데, 저를 포함하여 제 동아리 조원 중 3명과, 김경임 선생님이 지도 교사, 민길식 교수님이 지도 교수로 배정되어 한 달에 한 두번 정도 미팅을 하거나 만나면서 연구 논문을 읽고 공부를 같이 하고 실험을 했었습니다. 문제는 교수님도 처음 보는 분야였기에, 저희 4명이 낑낑 거리면서 겨우 영어 논문을 번역해서 같이 가져가서 교수님과 읽으면서, 이때 번역은 이런 식으로 하는 거야 식으로 화학에 대해서 심도 있는 전문 용어를 설명해주시면서 같이 공부를 했었습니다. 일방적으로 교수님이 가르치시는 식이 아니었기에, 상당히 난이도가 있었고 많이 빡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대학생이 된 지금도 느끼지만, 보통 대부분의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은 저와 달리 교수님과 그렇게 자주 연락하거나 질문 답변을 주고 받질 않더군요. 제가 명시적으로 동아리 장이면서도, 4명의 그룹 중에서 리더 역할을 암묵적으로 맡았기에(또한 김경임 선생님의 욕받이로도 암묵적으로 정해졌었기에 ^^) 주로 제가 많이 아이디어라던지 질문, 토론을 교수님과 주고 받았었습니다.




 특히 당시 학생부 전형을 대비하기 위해서 제가 다니던 대동고 자체에서 교내 논문 대회를 만들었었는데, 김경임 선생님은 우리에게 소스가 많으니까(그러니까 자료나 지식에서 유리하니까) 이걸 교내 논문 대회에 중간 보고서 형식으로 출품하자고 하셨고, 어차피 12월 말에 발표 논문을 제출해야 했기에 일석이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당시 R&E 대회와 교내 소논문 대회가 우후죽순 열렸었기에 이런 소논문 가이드 책이 많이 있었는데, 직접 다 구매하여 읽어보면서 생애 처음으로 논문을 직접 집필했었습니다. 이 때의 경험이 제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890521






 워낙 주제 자체도 어려우면서 제가 처음으로 논리적인 글쓰기, 소논문을 써보는 것이었기에 정말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었습니다. 마침 김경임 선생님도 따로 또 불러서 히스테리를 부리지 않아서 꽤나 좋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구요.




 특히 교내 논문 대회의 심사위원 중 한 명이 바로 김경임 선생님이었고, (좀 공정성에 문제가 있을 법 하지만 ^^;;)이후 교내 상을 받지 못하자 이 이야기를 들은 제 과외 선생님은, 아니 대체 본인이 심사위원이면서 본인이 지도한 애들한테 상을 안주는게 말이 되냐는 식으로 말씀하신 적도 있었습니다 ㅋㅋㅋ




 뭔가 이상하다구요? 네 맞습니다. 당시 6팀까지 상을 주었는데(금상 1팀 은상 2팀 동상 3팀 이런 식으로), 저희는 광!탈!해버렸습니다. 당시 제가 워낙 호기심과 질문이 많고 과학에 관심이 커서 대부분의 과학 선생님들과 친했었는데, 그 중에서도 물리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 선생님은 저희 논문을 보고 이건 안된다고 반려를 해버렸다고 훗날 듣게 되었습니다.




 당연~하게도 김경임 선생님의 히스테리와 짜증, 책임 전가를 엄청나게 받게 됩니다. 대체 왜 이런 그림을 넣었느냐, 이건 그렇다 치고, 왜 이 부분이 논문 결과로 썼느냐, 이건 연구 과정이야 과정 하면서 엄청나게 혹평하였습니다.(조금 있다가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논문이라는 것은 반드시 연구 결과가 있어야지 완성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제가 쓴 내용과 구성이 타당함이 오래 지나지 않아서 밝혀집니다)








 위에서 제가 김경임 선생님한테 온갖 짜증과 화풀이 대상을 받았는데, 항상 뒤에 반전이 있었죠? 뭐 우리 동아리가 대체 한 게 없다 이런 식으로 비하를 당했는데 바로 그 다음날 명품 동아리로 교육청에서 상을 받는 것처럼? ㅋㅋ




 이번에도 마찬가지의 일이 벌어집니다. 당시 논문의 주 집필자는 당연하게도 저였고, 주로 제가 직접 소논문 집필 관련된 도서를 구매해서 읽고 따라해보았고, 제 과학 과외 선생님이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제가 쓴 목차를 보시고 괜찮다고 평을 해주시기도 했었습니다. 




 그때 당시 교내 상조차 받지 못했다는 것은 제게도 큰 충격이었고, 특히 가장 게으르고 욕심만 많으며 제대로 참여하지 않던 장시훈이라는 놈은 이따위로 할 줄 몰랐다, 자신을 빼놓고 자기들끼리 해버렸다 이런 식으로 또 빠져나가더군요 ^^ 제가 굉장히 큰 좌절감을 겪었습니다.




 며칠 지나서, 경북대에 방문하여 민길식 교수님께 저희가 직접 써본 논문이라고 하면서 건네드려서 한번 평가를 부탁드렸습니다. 민길식 교수님은 일단 굉장히 흥미롭게 펼쳐보시더니, 정말 구체적으로 저희가 쓴 내용을 읽고 "와 이거 맞다 나도 KIST에서 관련 연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등, 직접 집필한 저희가 보기에도 재미 없어 보이는 내용조차 꼼꼼히 읽으시더니 하시는 말씀이 뭐냐면




 "도대체 이런 논문을 어떻게 쓴 것이냐. 이건 웬만한 대학원생도 쓰지 못할 정도로 높은 퀄리티의 논문이다. 정말 대단하고 잘 했다" 라고 김경임 선생님과 정 반대의 평가를 하셨습니다. 저희의 탁월한 소논문에 별다른 조언이나 지도를 한 적이 없었음에도 높은 퀄리티의 논문을 저희끼리 스스로 집필한 것을 대단히 높게 평가해주셔서, 헤어지면서도 아주 열심히 한다고 극찬을 해주셨습니다.






교내 대회 입상에 실패했다고 온갖 욕을 다 먹다가 한순간에 분위기가 반전되던 그 날은 ^^ 정말 시원했습니다. 이때 제가 처음으로 '사이다'의 새로운 용법을 알게 되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민길식 교수님은 저희의 소논문을 보고, 대체 이 논문이 1등이 아니라면 어느 논문이 1등을 했는지 몹시 궁금해 하셨습니다. 상황이 완전히 역전이 되니까 김경임 선생님은 이제 핑계를 대기 시작해서, 본인도 심사위원이었으나 다른 심사위원이신 물리 선생님이 안된다고 강하게 해서 안되었다는 식으로 해명을 하더군요.




 이때가 아마 6~8월달 정도로 기억하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주도권이 제게로 넘어오면서 잠시동안 김경임 선생님은 제게 함부로 말을 못했었습니다. 심지어 나중에는 문자로 "원래 리더라는 역할이 힘든 거다..." 라는 식으로, 본인도 갈군 것 자체는 인정을 하는지 추하게 변명을 하더군요.




 다만 이때 완전히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어서, 당시 민길식 교수님께서는 실험을 통해서 우리가 제시한 아이디어, 당시 양자점 용액을 유리나 안경에 발라서 마치 선글라스 같은 효과를 가질 수 있게끔 하자는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한 실험 준비를 요청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때 느낀 것은, 우리가 직접 실험을 하면 그 결과가 불확실하고 성공을 보장 못하기에, 앞서 자료 조사와 소논문 집필 중에 찾았던 대로 KIST에서 개발한 양자점 패치, 이미 제품으로 나온 것을 구매해서 그것을 유리에 붙이는 식으로 하여 실현 가능성을 보여주자는 아이디어로 장문의 보고서 3장 짜리를 제시하였습니다. 물론 이때 소논문 껀으로 완전히 주도권을 상실한 김경임 선생님은 제 건의에 찍소리도 못하고 바로 그대로 교수님께 전달을 하였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교수님께서 제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비판하시고 약점을 지적하셨는데, 제 아이디어가 지나치게 목적지향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실험을 직접 해보고 실패를 경험해보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회사에서 상품을 내는 것처럼 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씀해주시더군요.




 교수님께서 제시한 '실현 가능성을 증거로 제시'라는 점에 대해서 제가 지나치게 목적 지향적으로 몰두한 나머지, 연구자로서의 자세는 다소 부적합한 사고 방식을 가졌다고 지적을 해주시면서 여러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특히 당시 파란색 LED가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었으나 일본에서 그걸 만들어서 노벨상을 탔었거든요. 봐라 직접 실험을 해봐야 되는지 알 수 있지 않느냐고 하셨고.




 또한 학문의 발전에 대해서도 덪붙이신 것이, 어디 저개발 아프리카 국가가 미국이나 유럽의 우수한 논문을 다 프린트해서 단순히 읽는다고 해서 산업이 발전하고 과학이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직접 해보고 따라해가면서 배우고 시행 착오를 겪고 그 경험이 쌓여야지 성공하고 발전을 이어지는 것이라고 매우 논리적으로 제 목적 지향적 사고에 문제제기를 하셨습니다.




 다만 제가 다소 정답과 다른 생각을 했음에도, 제가 매우 열정적으로 나름의 합리성과 근거를 제시하면서 장문의 보고서를 올린 점과, 당시 교수님과 적극적으로 토론을 했었던 것 덕분에 나중에 교수님께서 저에 대한 코멘트를 하실 때 아래와 같이 꽤 긍정적으로 적어두셨음을 훗날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실험을 하기로 하였고, 당시 저와 이야기를 하면서 느끼신 점을 솔직하게 적어주셨었습니다





 다만 나중에 대학을 입학하고 나서 지금의 제 지도교수님과 당시 이야기를 해보니까, 딱히 제가 엄청 잘못한 것도 아니더군요.




 보통 화학과, 화학교육과는 전통적이고 보수적이다 보니까 레포트도 다 손으로 적게 만들고, 실험과 실증을 중시하는 학풍을 가졌다고 하십니다(참고로 현재 지도교수님 또한 화학과 출신이십니다). 결코 제가 이상한 생각을 한 것이 아니며, 단지 당시 상황과 맥락을 더 깊이 있게 파악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격려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이렇듯 당시 고등학생으로서 다양한 활동, 심지어 대학생보다도 더 활발한 연구 활동과 논문 집필 경험은 제게 풍부한 사고력과 경험으로써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이때 김경임 선생님은? 아주 신이 나셨죠. 완전히 분위기가 또 다시 반전된 것은 아니지만 제 약점을 잡았으니, 그걸 빌미로 뜬끔없이 4시에 저녁을 먹자면서 일부러 자리를 만들어서, 마치 변명하듯이 답답함을 호소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당시 제 표정이 굉장히 험악하고 매우 기분이 나빠보였나봐요, 카톡으로 따로 저를 제외한 나머지 3명 조원들에게 혹시 제가 아픈 것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더군요.




 당시 제가 기분이 굉장히 상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일종의 정치질을 당해서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분명 김경임 선생님도 제 지나친 목적 지향적인 아이디어의 문제점을 느꼈지만, 바로 이전에 한번 뒤집어진 경험 때문에 아무런 코멘트나 조언을 하지 않고 그대로 제 보고서를 교수님께 보내버렸거든요. 예전에 부작위로 인해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에 대해서 설명한 것이 있는데, 김경임 선생님이 의도적으로 절 악담하고 보고서를 조작하지는 않았지만, 뻔히 보이는 문제점을 방치하고 무책임하게 그냥 기계적으로 전달하여 저를 망신 주었다는 생각에 매우 화가 났었습니다.




 게다가 이때 교수님께 심각하게 면박을 당하거나 혼난 것은 아니었지만, 제 부족함이 드러난 사건이었기에 훗날 다시 김경임 선생님이 절 욕받이 화풀이로 본인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불러다가 갈구는 것이 다시 일상화가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제가 너무 순진하고 순수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정치질, 눈치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고, 오히려 이때 저를 심하게 정신적으로 모욕했던 선생님 덕분에 지금은 남들보다 더 눈치가 빨라진 것 같아서 오히려 감사한 마음도 있네요 ㅋㅋㅋ




 대망의 2015년 12월 23일 수요일, 경상북도 교육청으로 13개의 팀이 참석하여, 각각 6팀과 7팀 씩으로 조가 나뉘어서 각 조에서 한 팀만 최우수상을 수여하고, 나머지 팀은 우수상을 수여하는 발표 대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당시 발표 대회에서는 조리있게 잘 발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질문, 비판, 아이디어 건의 등 또한 매우 중요한 평가 요소였나 봅니다(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나중에 결과를 보고 나서 거꾸로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우연치 않게도, 당시 저희가 속한 조에 한 팀이 바로 경산과학고였습니다. 왜 아직도 이 과학고를 기억하냐면, 제가 중학생 때 떨어진 과고였거든요 ㅋㅋㅋ




 그때 경산과학고에서는 커피박을 이용한 토양화라는 주제로, 커피를 우려내고 남은 찌꺼기를 토양으로 재활용하는 것에 대한 주제로 발표를 했었습니다. 제가 지금은 많이 다듬어졌지만, 당시에는 굉장히 호전적인 성격이었거든요. 우리가 최우수상을 받지 못할지언정, 니네들은 절대로 받지 못한다는 마인드로 짧은 발표 시간 동안 굉장한 집중력을 동원해서 논문을 빠르게 읽어보았습니다.




 거기서 제가 한 가지 착각을 한 것이, 처음 발표를 들을 때는 '토양화'가 아닌 '퇴비화'였는데, 다시 읽어보니 '토양화'이더군요. 당연히 흙으로 재활용 한다는 것으로 이해가 되는데, 이때 바로 머리를 스친 것이 '왜 하필 토양화를 했을까. 퇴비화는 안되는가. 거름으로 활용하는 것과 토양으로 활용하는 것은 다른가'가 떠올랐고, 그 질문을 하였습니다.




 당시 그 질문을 하고 집중하느라 심사위원 선생님들(아마 교육청이나 과학고등학교 등 선생님이셨던듯 합니다. 게다가 한 여선생님은, 약 4개월 전 동아리 발표대회에서 보았던 선생님이셔서 꽤나 반가웠었습니다)을 보지 못했는데, 당시 저희 조원 중 한 명이 증언하길, 제가 그 질문을 하는 순간 심사위원 선생님들께서 서로 눈치를 빠르게 보시더니 뭔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열심히 무언가를 적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당시 아침부터 이어진 발표 대회가 마치고, 저녁 쯤에 결과가 나왔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최우수상을 받은 팀이 선정되었는데, 쨔잔 우리 팀이 최우수상을 먹어버렸네? ㅋㅋㅋㅋ




 


http://www.ksmnews.co.kr/news/view.php?idx=125730





 앞서 이야기 했듯이, 일단 저희 조의 주제 자체가 매우 신선하고 어려운 주제였습니다. 양자점은 당시 유행하던 최신 기술로 교수님조차 호기심에 지원할 정도로 일반적이지 않은 분야였으며, 저희가 직접 번역한 것을 같이 읽어가며 공동으로 공부를 할 정도로 교수님이 일방적으로 가르치시는 것이 아니라, 정말 쇄빙선이 빙하를 뚫고 지나가는 것처럼 노를 열심히 저어야 했었습니다.




 또한 대회 당일날 제가 번개처럼 토양화와 퇴비화의 차이를 물어볼 수 있었던 것 또한, 평소 교수님과 여러 대화를 자주 나누어보고 비판적 사고력을 훈련시켰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정작 지도 교사인 김경임 선생님은 저를 깍아내리기만 했었으나, 과학 과외 선생님은 제 논문 초록 목차도 살펴보시고 여러 조언을 해주시는 등 도움 또한 많이 받았었습니다.




 갑자기 제 자랑을 늘어놓은 것 같은데, 이 에피소드를 연속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면 다소 맥락이 끊길 듯 하여 적어둡니다. 당시 대회에 참여했던 과학고등학생들에게는 악감정이 없었지만(오히려 부러웠지), 저를 떨어뜨린 경산 과학고가 상을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매우 만족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물론 이 때 전후로 해서도 온갖 지랄을 김경임 선생님이 저한테 쏟아냈는데, 당시 장시훈 이라는 놈이 김경임 선생님과 싸우더니 자기는 중간에 포기하겠다고 불과 발표 한 달 전에 선언하고 드러누워버렸습니다. 어떻게든 중간에 낑겨서 중재를 하고 감정을 식혀줄려고 노력을 했는데, 정작 이 사단을 낸 김경임 선생님은 "그러게 왜 애를 건드려~"라면서 마치 제가 자극을 해서 이런 불상사가 발생한 것처럼 책임을 회피하기도 해서 혈압이 뻗쳤던 기억도 납니다. 물론 이 장시훈이라는 놈도 제게 막 억울한 이야기를 하길레 들어줬는데, 자기 기분에 자기가 취해서 나중에는 저에게 화를 내더니 "니가 먼저 시비 걸었잖아"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더군요. 어휴 진짜 암덩어리 새끼들 ^^




 또한 심지어 이 대회에서 수상을 하고 나서도, 연말이 되니까 김경임 선생님이 일부러 따로 부르더니 우리 동아리가 제대로 뭐 건진 것이 없다, 정신없었다(정신없이 열심히 했으니까 그렇게 상을 많이 받고 니도 교육감 표창을 받은 것이죠) 등등 온갖 짜증을 내면서, 이런 일이 없도록 인수 인계를 잘 하라고 하더군요. 물론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불과 며칠 뒤에는 다시 명품 동아리로 교육청에서 상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제 고3이 되었습니다. 이때 제가 고3이 됨으로써 더 이상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고 과거 1학년이었던 후배들에게 권한과 기획서 등 내부 자료를 넘겼고 완전히 은퇴를 한 덕분에, 김경임 선생님이 다시 저를 불러서 지랄을 하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이때 굉장히 기분이 너무 좋았는데, 이제 김경임 선생님이 스트레스를 안주니까 공부가 너~무 잘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과학 과외 선생님께도, 3학년이 되니까 공부가 쉬워지고, 집중과 몰입을 할 수 있어서 너무 기분이 좋고 성적이 정말 오르는 것 같다고 말씀을 드린 바 있습니다. 나중에 이 때 일을 선생님이 말씀하시면서, 보통 학생들이 3학년이 되면 힘들다 힘들다 이 소리만 하지 공부가 편해지고 쉬워진다는 말을 하는 애들이 없다고, 제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셨음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자! 이걸로 이제 곧장 저는 수능 공부에 몰입하여 수학 성적을 단숨에 극복하고 바로 정시로 대학을 붙었느냐? 이렇게 이야기가 끝났으면 무려 9년간 제가 정신적인 고통을 느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때 일은 오히려 전혀 엉뚱한, 저희 어머니로부터 터집니다.




 당시 제가 고3 초기 겨울방학 때 정말 수학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서,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60점을 오가던 성적을 단숨에 80점까지 올려서 매우 기분이 좋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저희 어머니도 너무 신이 나셨는데, 절대로 자식한테 해서는 안되는 말을 우연히 꺼냈고, 하필이면 제가 당시 안방 앞을 지나가면서 듣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이 뭐였냐면










 "수학 20점 올리는데 200만원 들었다" 였습니다.




 제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굉장히 독특한 것이, 보통 사람들은 화가 나면 처음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가 점점 식어가잖아요? 전 반대로, 처음에는 화가 안 나지만 서서히 올라가면서 결국 폭발을 하게 됩니다. 전 한번도 이성을 잃고 욕을 해본 적이 없는데, 이때 제가 처음으로 정신을 잃었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김경임 선생님한테 온갖 정신적 학대를 당할 때 하소연을 하니까, 엄마는 "으이구~ 선생님 말씀이 다 맞어~" 이런 식으로 같은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선생님 편을 들었거든요. 당시 저는 김경임 선생님한테 당하던 일을 유서로 쓰고 학교에서 뛰어내려서 자살을 할까 심각하게 고민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저희 어머니는 제가 겪는 어려움에 전혀 관심도 없었고 공감조차 하지 않고, 저 따위 소리를 내뱉었습니다.




 그런데 이제서야 고3이 되어 김경임 선생님이 저한테 정신적 학대를 안 하는 덕분에 제가 스스로 공부를 집중할 수 있었고, 성적을 가파르게 올리니 이제는 하는 말이, 제 과외비를 운운하며 수학 20점을 올리는 데에 200만원이 들었다 이딴 소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이성을 잃고 저희 어머니한테 온갖 쌍욕을 다 박았었는데, 기억나는 대표적인 말이 "김경임이 그렇게 좋으며 우리 가족이랑 이혼하고 저 인간이랑 결혼해라" 라던지, "김경임이 같은 여자라고 편을 드냐 가족 편을 들지 못할망정 그냥 집안에서 나가라", "내가 당장 학교 자퇴하고 학업을 때려치운 다음에, 편의점 알바로 월 100만원을 벌어다 줄 테니 엄마가 한번 수학 1등급을 맞아봐라" 등의 저주를 퍼부었었습니다. 제가 여태 딱 이때 유일하게 제 물건을 부숴보기도 하는 등, 그때 가히 이성을 잃었었습니다.









 말리는 시어머니가 더 밉다는 말이 있죠. 오히려 김경임 선생님은 저와 남이니까, 저에게 아무리 함부로 상처를 주어도 그렇게 깊은 원한을 갖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같은 가족이라는 사람이, 오히려 학원비로 따지면 고등학교 2학년 내내 스트레스를 심하게 주어서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그런 식으로 따지면 몇 백만원은 족히 넘어가는 학원비 과외비를 김경임 선생님이 손실을 일으킨 것인데, 그 씨발년한테는 뭐라 안하고 저에게 그딴 소리를 하는 것을 보고 그동안 억눌러왔던 모든 스트레스와 억울함이 폭발하였었습니다.




 심지어 전 저희 아버지를 닮았고, 저희 아버지와 IQ도 비슷합니다. 저희 어머니는 예체능 계열이라서 애초에 공부도 잘 못하세요. 그런 인간이 학원비를 운운하니 너무나 억울하고 고통스러워서, 1년간 축적된 김경임으로부터 받은 스트레스가 저희 어머니를 향해 쏟아져 나갔습니다.




 때문에 당시 제 어머니가 제게 이런 막말을 했던 것은, 사후적으로 평가할 때 상승하던 제 성적을 크게 꺽고 제 공부 의욕을 박살냈으며, 이로 인해서 배탈이 심하게 나서 병원에 잠깐 입원하는 등 심각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그래서 이 일이 난 것이 2016년인데, 2024년인 무려 9년 동안 이 생각이 제게 깊은 스트레스로 남았으며, 뭔가 힘들때마다 이때의 일이 생각나서 절 괴롭혔습니다.























 자 이제부터가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어떻게 이런 트라우마로부터 극복을 하였으며, 이제 김경임이나 저희 어머니 정도의 그릇이 되는 인간들을 초월하게 되었는지요.




 저 같은 우울증 환자들의 대표적인 증상이 반추인데, 이는 과거의 불행했거나 고통스러웠던 경험을 다시 꺼내서 곱씹으면서 마치 지금도 당하는 것처럼 생각을 하며 스스로 고통을 받는 행동입니다. 제가 긴 재수 생활로 불면증을 겪고 코로나로 중증 우울증을 겪으면서 이 반추가 매우 심해졌습니다.




 제가 처음 코로나 블루에 걸려서 2021년도에 해운대 인제대학병원에 갔을 때, 저를 보시던 교수님은 "지나간 일은 그냥 잊으세요"라고 매우 명쾌하고 확실한 해결책을 제시해주셨지만 전 심정적으로 공감이 되질 않았습니다. 왜 그랬냐면, 이때의 일을 잊는다는 것은 용서한다는 의미도 있으며, 이때의 일을 잊으면 또 이런 일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심리학에서도 밝혀진 것이, 인간은 행복했던 과거 기억보다 불행했고 부정적인 기억에 훨씬 더 민감하고, 그 생각을 더 자주 합니다. 사람이 마조히스트라서 스스로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모두 나름의 합리성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불킥 많이 해보셨죠? 저는 엄청나게 많이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유가 다 있습니다

https://blog.aladin.co.kr/haesung/popup/7436954





 행복했던 기억, 좋았던 과거는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다시 생각해보았자, 잠깐 기분이 좋아질 뿐이죠. 사실 애초에 과거 기억을 되새기는 것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부정적인 기억과 경험은 제 생존과 직결된 민감한 문제입니다. 예컨데 여러분이 시험에서 어떤 심각한 실수를 해서 성적이 박살났다, 두고두고 기억이 날 것입니다. 왜냐? 그 기억을 기반으로 절대로 동일한 실수를 하지 않으려는 생물의 본능적인 설계 때문입니다.




 때문에 실제로 삶에서 좋은 일이 9이고, 불행한 일이 1이라 하더라도, 사람은 오히려 거꾸로 과거 기억을 회상할 때 불행한 일을 9 이상으로, 좋았던 일을 1 이하의 빈도로 되새김질 합니다.




 제가 김경임 선생님에게 학대 당했던 기억과 제 어머니가 제게 했던 막말을 계속 기억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그 말들 자체가 제 정신 건강에 큰 악영향을 주어서이며, 동시에 또 이런 일이 미래에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자연스럽게 준비를 하기 위함입니다.









 당연히 적절한 반추는 미래의 위험을 대비하는 좋은 기제로 작용하지만, 이것이 과다하게 심각해지고 일상 생활에 지장을 주며, 감정 조절이 힘들어질 정도로 자주 일어나고 심하게 반복되면 그때는 정신 질환으로 분류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은 당연하게도 반추를 합니다만, 그것 때문에 너무 스스로가 힘들면 자기 파괴적인, 그러니까 자해를 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제 개인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중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당시에 전 학년이 단체로 IQ나 적성 시험 비스무리 한 것을 쳤는데, 문제는 듣기 평가였거든요. 전 당연히 듣기가 다 끝난 이후에 천천히 OMR에 옮겨 쓸 시간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었습니다.




 당시 저희 반 감독으로 김인태 라는 도덕 선생님이 오셨는데, 흥미롭게도 제가 여태 만난 윤리 및 도덕 선생님들 치곤 정상인이 없었고 하나같이 변태 성욕자처럼 학생을 때리는 것을 좋아했었습니다. 그 정도 인성의 인물이 감독이 되었었으니 당연히 OMR 카드로 옮겨적을 한 1~2분의 여유 시간을 주지 않고 바로 걷어버렸습니다.




 이때 하도 어이가 없어서 웃으면서 저희 부모님께 이야기를 했는데, 저희 아버지가 보통 저한테 화를 안 내시는데 저한테 화를 내시면서 그런 것을 자랑이라고 말하냐고 혼내신 적이 있었습니다. 이 또한 저에게 꽤나 큰 상처가 되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1학기 시험을 치던 도중에 갑자기 이때의 기억이 나면서 도저히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겠더군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상담 선생님께 나누었는데,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그 기억이 떠오르고 반추를 하는 것은 그 일을 겪지 않기 위함이다. 1학기 기말고사를 치면서 혹시라도 마킹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빵점을 받아버리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뇌가 지금과 비슷한 상황의 부정적인 기억을 끄집어내서 주의를 주는 것이다' 라고요. 매우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설명이었습니다.







성폭행 같은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게 되면 피해자는 그것을 반추하면서, 스스로를 더 옥죄이고 압박을 합니다. 가해자 새끼들은 한 번 저질러버리고 당당히 사는데 항상 피해자만 영원히 그것 지고 살아야 해요. 얼마나 이상한 세상입니까?

https://m.health.chosun.com/svc/news_view.html?contid=2023031502237









 저는 무려 9년 동안이나 당시 김경임 선생년과 어머니한테 들었던 막말을 곱씹으면서,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이었습니다. 와 9년이에요 9년. 진짜 ㅋㅋㅋ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이건 진짜 아니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10년을 채우면 내가 진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까, 어차피 그 김경임 선생님은 애초에 자신이 가해를 했다는 것 자체를 인지하지도 못하면서 다른 학생들에게 또 짜증과 히스테리를 부리면서 계속 살아갈 것입니다(나중에 졸업 이후에 실제로 돌아와봤더니, 담임 선생님이 되었는데 학생들에게 개인 면담을 할 때 구박을 그렇게 많이 한다고 하더군요 ㅋㅋㅋ). 문제는 피해자는 계속 그 일을 곱씹으면서 계속 피해를 본다는 것입니다.




 제가 9년 동안 반추를 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와 이건 진짜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고, 특히 생각을 해보니 궁극적으로 나의 행복과 안전을 위해서 무엇을 하는 것이 더 옳은 가를 진지하게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제가 다니는 대학은 조계종 계열의 학교이고, 알게 모르게 불교와 부처님에 대한 이야기를 좀 듣게 됩니다. 또한 개인적으로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듣는데, 정말 들어보면 온갖 세상의 답답하고 미칠 것 같은 개인 고민을 가지고 오는데 법륜 스님은 매우 능수능란하게 항상 지혜롭고 일관된 답변을 해주십니다.











유머까지 겸비한 정말 유명하신 스님...

https://kr.pinterest.com/pin/1146940230083026530/









 특히 저 또한 거의 정신적인 강간을 김경임 선생님에게 당해본 입장으로서, 정말 쓰레기장 같은 집안에서 폐인처럼 썩어가는 성폭행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눈물이 납니다. 전 개인적으로 성폭행범은 그냥 그대로 찢어 죽여도 무방하다고 생각하고, 전자 발찌가 뭡니까 목에 달아서 누구나 볼 수 있게 만들고, 자르려고 하거나 도망가려고 하면 바로 싹둑 해버리는 기능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법륜 스님에게 성폭행 피해자가 왔는데, 충격적이게도 가해자가 무려 자신의 아버지이더군요.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법륜 스님의 답변이었습니다. 워낙 충격으로 다가왔기에, 다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도 입방아에 오를 정도로 특이했는데.










 답변은 바로 '그냥 잊고 살라'라는 것이었습니다. 어차피 본인의 아버지가 자신을 성폭행한 것은 벌어진 일이고 이미 과거이며 되돌릴 수 없다. 그것을 붙잡고 사는 것은 피해자 본인 스스로만 고통스럽고 괴로움 속에서 반추를 하는 것이다. 피해자 본인을 위해서라도, 그런 극단적인 일을 겪었음에도 극복을 하고 잊고 정상적으로 잘 살길 바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결코 가해자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소 충격적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제 입장에서도.




 하지만 이런 식의 답변 내용은 항상 스님이 하시던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부처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는데, 우리의 인생이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고통을 놓지 못한 것이라는 말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생각을 하면 할수록 당연히 부정적인 반추를 하게 되고, 그럼 더더욱 일상에 집중하지 못하고 좋지 않은 길로 가게 되니까, 생각을 멈추고 행동을 하며 현실에 집중하라는 조언입니다.




 올해 중순 쯤에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밀양 지역에 대한 불매 운동이 퍼지면서 밀양 시장 등이 공개 사과를 하기도 했었죠. 전 이 일을 잘 몰라서 뒤늦게 찾아보았는데, 이야 사람들이 괜히 밀양 지역을 일반화하는 것이 아니더군요. 무려 60%의 당시 밀양 사람들이 집단 성폭행에 피해자의 책임이 있다고 답변했으며, 밀양 경찰은 조사하는 과정에서 너 같은 외부 지역 사람이 흘러들어와서, 밀양의 나중에 큰 위인이 되고 기둥이 될 학생들(더 충격적인 것은 가해자에 여성도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을 망신시키는 것이다 등의 극언을 했었더군요.




 웃긴게 가해자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못 했었다는데, 당연하게도 성폭행 피해자는 지금도 상담과 심리 치료를 받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완전히 극복하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참으로 웃기죠, 가해자들은 멀쩡한 사람 행세 하면서 당당히 취직도 하고 공무원도 되어있던데, 아무런 죄 없는 피해자는 2차 가해를 당하면서 평생 동안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갈 것인데 말이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의 아픔을 공감하고 분노를 해준 것에 대해서, 밀양 사건 피해자분이 직접 편지를 통해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주고 분노를 해주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다고 전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복수를 하면 과연 상처가 치유가 되고 트라우마가 사라지고 있었던 일을 없엘 수가 있냐는 것입니다. 일단 그 가해자들을 찾아가서 정의구현을 한다면 통쾌하긴 하겠죠. 그런데 예전에도 제가 말했죠 좋은 기분 2달 가면 진짜 오래 간 것이라고. 통쾌함을 오래 가지 못하고, 2달만 지나도 통쾌함은 사라지고 트라우마는 여전히 남을 것입니다.




 게다가 복수는 자기파괴적인 행동입니다. 너 죽고 나 죽자 식입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사적 제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피해자가 억울해서 가해자를 찾아가서 죽여버려도, 피해자는 살인자로서 재판에 넘겨질 것입니다 물론 참작은 받겠지만 말이죠. 정의구현해서 통쾌하긴 하겠지만, 여전히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고 싶은 피해자는 큰 피해만 겪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에게 요구되는 것은, 피해를 곱씹고 반추하는 것보다도, 튼튼한 근본적인 멘탈을 기르고, 강력한 회복탄력성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외부 충격으로부터도 빠르게 극복하여 정상으로 되돌아 올 수 있는, 오뚝이 같은 회복 탄력성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영화 같은데서도 보면 막상 복수를 하고 나서 공허해서 자살해버리는 주인공도 있지 않습니까? 복수가 본질이 아닌 것입니다. 나의 궁극적인 치유와 회복, 극복이 본질인 것입니다.








ㅋㅋㅋ 결국 키아누 리브스 형님도 인정하시는 것이, 복수를 해도 소중한 사람이 되돌아오지 않으며 완전히 우리가 회복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복수는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https://m.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54876563 








 비슷한 이야기가 인도인가 네팔 승려들에 대한 전설로도 존재합니다. 어느 어여쁜 여인이 강물의 건너편에서, 옷이 젖을 까봐 건너오지 못하자 두 승려 중 한 승려가 기꺼이 그 여인을 어부바 해주고 강을 건너게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른 승려는, 어떻게 승려가 그렇게 욕망을 가지고 여인과 몸을 맞댈 수 있는가 내내 분노를 느꼈고,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 그 이야기를 꺼내자, 그 여인을 업어준 승려는 오히려 호통을 치면서




 "나는 그 여인을 강물을 건너게만 해주고 바로 내려주었는데, 넌 아직도 머리에 그 여인을 이고 있구나!!" 라고 화를 냈다는 이야기입니다. 뭔가 의미심장하지 않나요?




 그래서 주로 생각이라는 것은 부정적이고, 걱정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주로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데, 과거는 돌아오지 않으며 미래는 어찌 될 줄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생각을 하면 할 수록 주로 부정적인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기 마련입니다. 애초에 생물이 그렇게 설계되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그런 습관과 사고 방식이 너무 심해지고, 특히 휴대폰이나 SNS 유튜브 등 도파민을 쉽게 자극하는 도구가 다양하게 있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숙고하고, 깊은 생각을 하기 더 어려워졌기에 이 것을 깨닫지 못하고, 계속 고통 속에서 반추를 하며 스스로를 깍아내리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신건강 의학과에서는 생각을 줄이고 운동을 하며, 현실과 현재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것을 적극 권장합니다.




 부처님은 이미 오래 전에 이 깨달음을 얻고 널리 알리셨고, 현대 정신건강과 뇌과학 등의 의학 계열에서 과학적으로 검증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한때 자살 충동을 심하게 겪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과정을 2~3번 정도 겪어보았었습니다. 그런데 추가적으로 첨언을 하자면, 항상 자살 실패자들, 그러니까 자살로부터 우연히 생존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살에 실패했다는 것에 안도한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자살 충동은 폭풍처럼 강렬하게 몰려오는 생각의 회오리지만, 그 회오리를 잠시만 견디면 다시 되돌아옵니다. 그 순간에 너무나 흥분해서 실행으로 옮기면 돌이킬 수 없는 일로 이어지고 맙니다. 차분히 좀 생각을 해보고, 약간 더 한 발자국 벗어나서 조금이라도 더 객관적으로 평가를 해본다면, 역시 자살이나 가해자를 향한 자기파괴적인, 자폭과 비슷한 복수는 그다지 현명한 선택이 아니구나를 알 수 있습니다. 저도 결국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살은 좀 아닌거 같다, 여태 노력한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살 실행까지는 가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제 대학의 지도교수님은 매우 여유롭게 제 자살 충동에 대해서 설명해주시는데, 그래 맞다 나처럼 나이가 들고 신진대사가 떨어진 사람은 자살 충동도 별로 안 들고 자살을 하지도 않지만, 너처럼 젊고 아직 신진대사가 빠른 사람들이 주로 자살을 하지 않느냐. 보통 자살했다는 위인들도 다 젊었을 시절에 자살하지 않았느냐 라고 저를 웃기게도 하셨습니다 ㅋㅋㅋㅋ




 마침 카이누 리브스가 출연한 불후의 명작 <매트릭스> 또한 이런 불교의 가르침과 굉장히 유사한 개념을 토대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결국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은 교묘하게 조작된 가짜이고, 본질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본질을 깨닫게 되면 난 심지어 총알을 멈출 수 있을 정도로 자유로워지고 막강해진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사실 총알은 존재하지 않고, 그것에 맞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를 죽게 만들지, 사실 총알은 허구일 뿐이다. 나는 결국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짐으로써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장 9년에 걸친 제 부정적인 반추를 오늘날 이르러서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저보다 훨씬 더 심각한, 더 끔찍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도 많기에 제가 함부로 조언을 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제가 생각하기에 오늘 제가 깨달은 이 생각은 이후에 제가 더 심한 일을 당하더라도 여전히 주요하게 작용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실패와 상처를 극복하고, 성장을 하며 험난한 세상을 개척하고 우리가 진정 자유와 평등,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다름 아닌 우리 스스로의 생각을 바꾸고,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며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임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김경임 선생님한테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난 너를 때리거나 칼로 찌르지 않고도, 복수를 하지 않고도 너를 진정으로 극복했고 너보다 더 고차원적인 존재로 올라갔다 씨~~빨련아 ㅋㅋㅋㅋ 개소리 더 해보라 난 꿈~쩍도 하지 않는다 ㅋㅋㅋㅋ 라고요.




 문제는 나에게 있었던 것이지, 그 나쁜 인간들에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내가 바뀌고 나 스스로가 튼튼해지고 강해진다면, 아무리 나쁜 일이 휘몰아쳐도 결국 나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공부를 하고 성찰을 하고 명상을 하면서, 과거 예수님이나 부처님들이 가셨던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are-세종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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